1.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서울에 유명한 골목길들이 많은 것을 보았을 때,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목길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경리단길, 가로수길, 익선동길, 힙지로, 삼청동길, 연리단길, 망리단길, 샤로수길 등 서울에는 수도 없이 많은 골목길들이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어릴적 우리 동네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은 나와 내 친구들의 놀이터이자 어머니들의 수다방이었다. 동네사람들은 주로 골목에 모여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더운 여름날에는 집앞 골목길에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시대가 흘러 아파트로 주거 환경이 바뀌고, 집집마다 차가 생기면서 골목길은 점차 사라지거나 자동차에 점령당했다. 어린 시절 나의 골목길은 이제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는 골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망원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2.
사람들이 공간의 크기를 느낄 때 면적만을 보고 크다고 느낄까? 그렇지 않다. 면적보다 중요한 것은 체적이다. 체적은 면적 곱하기 높이인데, 같은 면적이라도 높이가 높으면 훨씬 더 큰 공간으로 인식한다. 교회가 천장을 높게 만드는 이유도 더 크고 웅장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 복도와 골목은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바로 높이. 둘 다 좁은 통로이지만 골목의 천장은 하늘이기 때문에 체적이 무한대이다. 하늘을 볼 수 있는 골목길을 코엑스몰 보다 더 걷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이 것 때문이다.
체적 뿐 아니라, 골목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다른 한 요소는 바로 '속도' 다.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건축하자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에 나온 이야기다. 유현준 교수는 속도가 느리면 느릴 수록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편한함을 느끼고 머물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 한다.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는 번화하지만 사람들이 거기서 여유를 즐기거나 산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로수길, 삼청동길, 경리단길은 자동차가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거리의 평균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 심지어 데크에 앉아 속도가 '0'인 사람들도 많다.
위에서 말했듯, '체적'과 '속도' 이 두가지가 골목길에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다.
3.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 너무 면적만 확장거나, 앞만 보고 빨리 뛰어가기만 해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도 없고, 매력있는 사람이 되기도 힘들다. 여유와 쉼표가 필요하다. 내일은 예쁜 골목길 데크에 앉아 원없이 하늘 한 번 바라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