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 건축물은 외관을 중시합니다. 즉, 밖에서 예쁘게 보이는 건축물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베르샤유 궁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에펠탑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유럽 성들을 상상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되실 거에요.
하지만 동양은 좀 다르죠. 동양은 건물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도 산이나 물이 보이냐 안보냐를 굉장히 따지죠. 한강뷰, 마운틴뷰, 파크뷰, 오션뷰 이런 말들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죠.
그래서 동양 건물은 창을 굉장히 중요시 합니다. 창을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에 따라 건물의 가치가 달라지죠. 봄에는 꽃이 보이고, 여름에는 새가 보이고,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설경이 펼쳐지는 창문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 처럼 바깥 풍경을 마치 벽지나 액자 처럼 들여 오는 것을 '차경' 이라고 합니다.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이죠.
2.
'차경' 이 조금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차경' 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자라는 건축물입니다. 서양인들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일만한 건물이었을 거에요. 건물이 뼈대와 지붕은 있는데 벽이 없습니다. 뭐 건물을 짓다 만 것도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건물은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전혀 그런 기능이 없죠. 사실 한 겨울에는 바깥에 있는 거나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조들은 정자 안에 들어가 경치를 바라 보는 것을 운치있는 행동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건물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던 까닭이었겠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럼 정자는 실외인가요? 실내인가요? 실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동양의 입장에서는 사방이 아주 큰 창문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니까요.
이런 시설은 정자 말고도 있습니다. 바로 대청마루입니다. 대청마루는 방과 마당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여기에도 벽이 없습니다. 실내와 실외 중간 정도 역할을 하는 곳이죠.
유현준 교수님이 알쓸신잡에서 그러시더라고요. 현대 아파트의 대청은 식탁이라고요. 그리고 마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 거실이라고 합니다. 의외죠. 보통 대청이 거실일거라 생각하잖아요. 어른들이 식탁에 앉아서 거실에서 노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하면 유현준 교수님의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아무튼 동양에만 있는 '차경' 이라는 건축 용어를 알아봤습니다. 자연을 방안으로 들여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