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의 유래와 어원 / 닭갈비는 갈비가 아니다.
농경시대에 소는 단순한 식용 동물이 아니었다. 소는 밭을 갈고, 짐을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래서 소를 함부로 잡아 먹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하루에 도축할 수 있는 소의 숫자를 정해놓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나라의 허락을 받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있었다. 바로 소가 죽거나 다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이다. 그러나 이런 소들은 보통 늙고 병든 소로 살도 적고, 평생 일만했기 때문에 지방이 적어 고기도 매우 질겼다.
기록에 의하면 임금님께 진상하는 고기조차도 어떤 때는 7번 굽고, 7번 물에 담궜다고 한다. 그만큼 육질이 질겼기 때문이다. 다만, 평생을 일한 소도 거의 쓰지 않는 근육이 있으니 그 곳이 바로 갈비다. 갈비는 운동량이 적어 비교적 부드러운 육질을 유지할 수 있어서 가장 고급 구이로 여겨졌다.
당연히 서민들은 갈비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에서 나오는 제육은 대부분 왕족과 양반들이 차지하고, 평민들은 머리와 부속고기를 천민들은 내장과 피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갈비를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 다른 고기에 '갈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갈비'다. 고갈비는 고등어 구이를 뜻한다. 소갈비를 먹을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 고등어를 구우며 '이것도 갈비다. 고등어 갈비' 라고 말하며 유래되었을 것이다.
고갈비는 사람들의 여망이 만든 음식인 것이다.
* 여망 :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대하고 바람
닭갈비 역시 고갈비와 같이 대중의 여망이 만든 음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닭갈비의 재료에 닭갈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표현했듯이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은 없는데, 남 주기는 아까운' 그런 부위다. '계륵' 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닭갈비를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닭고기 야채볶음" 정도쯤 된다. 닭의 제육에 다양한 야채를 넣고 볶아낸 요리다. 70년대 양계산업이 발달하면서 대량으로 닭고기가 유통되었고, 여전히 소고기를 먹기 힘든 서민들은 닭고기를 볶아 먹으며 "이것도 갈비다. 닭갈비" 라고 말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고갈비나, 현대의 닭갈비나 모두 유래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본인이 상상하는데로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한다. 닭고기 야채볶음으로 살 것인지 닭갈비로 살 것인지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달려 있다.